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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회의 역사 (1)

침례교인들은 역사적으로

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험의 필요성

② 조직을 앞세우는 것을 반대하고 이차적으로 여기는 정신

③ 교회생활에 있어서 전 회중의 민주주의적 의사표시

④ 윤리적인 면에서 경건하고 품위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⑤ 국가의 교회지원을 반대하는 정교분리주의

등을 강조해 왔다.

* 특징

①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강력히 긍정

② 교회의 정통적인 그리스도론적 신조들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가 예언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삼중적인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침

③ 유아 세례 거부

④ 믿는 신자의 침례 지지

⑤ 신앙의 자유

⑥ 교회와 국가의 분리

⑦ 양심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 동참

* 신앙 원리

1) 권위 - 침례교도들에게 있어서 권위란 어떤 외적인 정치적이고 교권 계급적인 압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내적 인도하심을 말하는 것이다.

2) 교회 - 교회는 성서적인 신앙 공동체로서 정치적이나 문화적 영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도록 자유로 와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하나의 제도적으로 통일된 교회, 외적 강압에 의해서 종속된 교회가 아니라 내적으로 성령으로 인해 연합된 교회를 주장한다.

3) 성직자 - 직책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성직자라고 부르지 않고 직무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성직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성직자와 일반 성도간의 구별이나 계급의식은 없다.

1. 침례교회의 기원

침례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학설이 있다.

1) 계승설: 침례교회의 역사가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풀던 침례 요한으로부터 비롯되어 오늘날까지 그 신앙정신과 행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2) 재침례교 영적 혈연설: 유럽 지역에서 2세기 이후 기성교회(4세기 이후에는 국교화 된 천주교)로부터 분리되어 성경적인 신앙을 고수하려던 '분파들'이 정신적인 뿌리가 되며, 16세기전후의 종교개혁기에는 같은 개신교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았던 '재침례교도들'(Anabaptists)과 영적인 혈연관계를 가지고 이어져 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3) 영국 침례교회 기원설: 17세기 초에 영국 국교에 저항했던 비국교도들 중에서 침례교회를 설립했던 신앙인들로부터 침례교회의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의 세 가지 학설 중에서 오늘날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영국 침례교회 기원설"이다. 물론 17세기 영국에서 침례교회들이 생기기 이전에도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신앙과 행습을 고수하는 점에서 오늘날의 침례교회와 일치하는 무리들이 있어 왔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17세기 이전에 "침례교도"라고 공식적으로 불린 사람들이 실제로 나타났었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없으며, 정신적 혈연관계라는 비슷함만을 가지고는 그것을 역사적 실제로는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의 두 학설은 침례교회의 기원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적절치 않지만 정신적 동일성은 유지된다고 보아야 한다.

2. 영국의 침례교회

17세기 초 영국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영국국교회(성공회)가 사회적으로,종교적으로 주도권을 쥐고서 국교회에 동참하지 않는 모든 비국교도들을 심하게 박해하고 있었다. 비국교도들이 영국교회에 대해 반대했던 것은 유아세례, 교권주의, 침례의 의미와 방식, 성경의 권위, 신앙의 개인적 자유 등의 문제에 관한 내용들이다.

비국교도들에 대한 영국국교회의 핍박이 날로 심해가던 중 런던의 게인스보로라는 곳에는 존 스미스(John Smith)목사의 지도 아래 비국교도들의 모임이 하나 형성되었다. 스미스는 원래 영국국교회의 목사였는데 1606년 영국국교회의 신앙은 성경에서 많이 이탈되었다고 탈퇴한 후, 토마스 헬위즈(Thomas Helwys), 존 머튼(John Murton)등과 더불어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던 비국교도들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1609년 영국국교회의 핍박을 피해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교회를 세웠는데 그곳에 있는 동안 네델란드의 재침례교도들인 메노나이트(Mennonites)의 영향을 받아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만 침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였으며, 신앙이 없을 때 부모들에 의해 주어지는 유아세례를 철저하게 반대하게 되었다.

스미스는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1612년 사망하였으며, 헬위즈와 머튼이 이끄는 소수의 무리들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1611년(혹은,1612년)런던의 스피탈 휠드라는 곳에 한 교회를 세웠는데 이것이 영국(또한, 세계) 최초의 침례교회가 되었다. 교회의 대표였던 헬위즈 집사는 종교에는 개인적인 자유가 있기 때문에 신앙적인 문제에는 왕이 권위를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의 [죄악의 신비]라는 책을 저술했다가 제임스 I세 왕에 의해 투옥되어 1615년 옥중에서 사망한다.

영국의 침례교회는 18세기 중반 이후에 급성장하게 되는데, 이 시대의 기억할 만한 침례교인들로는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John Bunyan), 탁월한 설교가들이었던 로버트 홀(Robert Hall),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claren),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아이작 왓츠(Isaac Watts)등을 들 수 있다.

3세기가 지나는 동안 영국의 침례교회는 성장과 쇠퇴의 시기를 여러 번 거치면서 영국 내에서는 물론, 특히 미국의 침례교가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 침례교회의 가장 큰 공헌은 근대적인 세계 선교사업을 시작한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1792년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에 의해 본격화된 것이다.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