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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9: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왕상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왕상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왕상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왕상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왕상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왕상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광야로 갔다. 그것도 이스라엘 최남단 브엘세바로 갔다. 사환을 데리고, 나귀를 타고 이세벨 왕비를 피해서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브엘세바 지역에 도착해서는 거기서 사환과 나귀도 남겨두고 혼자 하룻길을 더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완전히 고립된 광야였다. 봄과 여름의 브엘세바 광야는 100~120도 정도 되며 강한 모래바람이 분다. 종종 도둑들의 공격도 있다. 그야말로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공간으로 홀로 들어갔다.

 

그는 왜 광야에 홀로 들어갔을까?

3년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고 선포하신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셔야 살 수 있는 환경이다. 사막이다. 그런데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니...

그럼 농사가 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왕권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부와 건강과 명예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슬과 비를 주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다.

 

국가도 하나님 앞에 범죄 하면 하나님이 황폐하게 하신다. 시청 앞에서 게이들이 벌거벗고 다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국에 진노하실 것이다.

18:4()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엘리야의 말처럼 3년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자 사람과 짐승들은 목이 타서 죽어나갔다.

 

3년이 지난 후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에게 나타난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으로 모이게 하여 영적 대결을 벌인다. 바알의 선지자 850명이 기도하였으나 불이 하늘에서 내리지 않았고 엘리야가 기도하자 불이 내려 응답하자 백성들이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열광적으로 외쳤다. 이때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기손 시내로 데려다 거기서 죽인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7번 기도할 때 손바닥 만한 구름이 보이고 이에 큰 비가 내려 가문이 해소되었다. 엘리야는 아합왕이 수레를 타고 가는 것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 거리가 서울에서 인천까지의 거리이다.

 

불신앙의 고집을 꺾고 다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이 회복될 때 자연도 치유되고 은혜도 받고 축복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단하도록 요구하신다. 이 시간 여러분의 바알은 무엇인가? 그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이 온 것을 찾아 다 없애 버리길 바란다.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1850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 사건은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가?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한 엘리야가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엘리야를 내일 이맘 때 까지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자 엘리야가 갑자기 낙담에 빠져 광야로 도망한 것이다.

 

왕상19: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바로 방금 큰 승리를 거둔 엘리야가 갑자기 낙담해서 도망을 갔다.

엘리야처럼 여러분도 낙담에 빠지지 않는가?

 

여러분도 뭔가 열심히 주님의 일을 했을 때

교회도 성전을 건축했을 때

큰 행사를 치렀을 때

교회에서 은혜 받고 봉사 열심히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낙담에 빠진 것이 없지 않은가?

평소 같으면 문제도 아닐 일이 마음에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는가?

사역도 싫고, 교회도 싫고, 가정도 싫어서, 도망가고 싶은 때는 없었는가?

여름방학 동안 학원 일 바쁘게 열심히 했는데 아주 작은 일로 실망에 빠질 수 있다.

때론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때론 서운한 소리 때문에...

 

예화)

 

그런데 그가 도착한 광야에는 그늘이 될 만한 나무가 없었다. 싯딤나무(아카시아 나무)와 종려나무(대추야자 나무)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된 그늘이 있을 것인데, 1-2미터 정도 자라는 싸리나무의 일종인 로뎀나무는 아무런 그늘을 제공하지 못한다.

 

될 때로 되라... 엘리야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이렇게 기도한 후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잠을 청한다. 어쩌면 진짜 죽고 싶었을지 모른다.

 

사람이 낙심될 때 마음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때 낙심을 어루만져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낙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찾아온다.

왕상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삶의 막바지까지 스스로 내달렸던 엘리야와 함께 하셨다. 엘리야의 행동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하여 그곳까지 찾아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곁에 같이 계셨다. 그의 우편에 그늘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어루만지며 사랑의 표현을 하시고 위로하셨다.

 

내가 낙심할 때 주의 종이 와서 위로하는 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요,

목장식구들의 기도와 정성도 하나님의 천사이다.

여러분이 낙심될 때 하나님은 그냥 놔주시지 않으신다. 어루만지신다.

여러분도 어려울 때 하나님의 어루만짐의 은혜가 넘치시길 바란다.

 

또한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

부부도 허그를 해야 한다.

아이들도 허그를 해주어야 한다.

손도, 머리도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고후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리고 일어나 먹으라고 한다. 그를 찾아온 선사가 엘리야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있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이었다.

왕상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은 그에게 생명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분명히 채워주시는 것이 있다.

(예화 2) 김 태순 성도님 병원비가 다 커버되었다.

 

엘리야는 떡과 물을 먹고 다시 누워서 잔다.

이때 천사가 두 번째로 어루만지며 먹을 것을 준다.

왕상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천사가 왜 어루만지며 먹을 것을 주었을까?

네가 갈 길이 있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다시 걸어가 만날 분이 있고 할 일이 있다.

주일 빼 먹고 있을 때 처음에는 위로해준다. 그리고 네가 지금 여기 앉아있을 것이 아니다. 갈 곳이 있다. 도전하신다.

 

진정한 위로는 무엇이냐? 새로운 할 일을 주는 것이 위로이다.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는 것이 위로이다.

 

결론

엘리야가 갈 곳은 어디인가?

왕상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위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위로함으로 힘을 얻어 갈 곳 까지 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종종 교회에서 위로에 만족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갈 곳이 있다.

결국 발걸음을 옮길 곳이 어디인가?

40일간 더 가서 도착해야 할 하나님의 산 호렙이 아닌가?

 

호렙산이 어디인가? 호렙산의 다른 이름은 시내산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진열을 가다듬고 옛 습관을 버리며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단하며 비싼 장신구를 떼어낸 곳이다.

33: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

 

또한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신 곳이다.

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십계명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곳이 호렙산이다.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진정 위로와 평안을 얻겠다고 다짐했던 산이 호렙산이 아니던가?

 

하나님께서는 이 호렙산으로 엘리야를 부르셔서 만나주신다.

왕상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말씀은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지금 여기에 와 있느냐? 사역을 하느라고 바빠서 이제 왔느냐? 로 들린다. 사역보다 하나님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네가 낙심하여 날 찾아왔으니 너는 다시 용기를 내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강한 바람으로, 바람 후에 지진으로, 지진 후에 불로, 불 후에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신다. 하나님을 만난 확신에 엘리야는 다시 사역할 힘을 얻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 길을 돌이켜 가라. (사명)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 - 역사를 주관하심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 외롭지 않도록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겠다.

 

 

엘리야가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이세벨을 만나 타협하지 않았다.

근심 속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로뎀나무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편한 환경에 가서 기도하라.

마음관리의 처음은 다시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루만지시며 위로해주셨다.

먹을 것을 주셨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도록 호렙산으로 가라고 하셨다.

 

엘리야는 순종했다. 위로를 얻고 끝이면 반복된다. 그런데 더 하나님을 만나러 호렙산으로 갔다. 거기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로 간 것은 중요하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비록 죽여달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천사의 말을 듣고 다시 호렙산으로 향한다. 그러니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 진정한 위로와 사명을 받는다.

호렙을 향하고 있는 엘리야.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무엇이 마음관리인가?

낙심이 될 때는 다른 것 찾지 말고 하나님만 찾아라.

위로를 받았으면 용기를 다시 내 보아라.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나 다시 사역을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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