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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 TOP20 듣기

20181216일 주일예배 후회하지 마

 

고후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7: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 바울이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 처한 상황은 암담했다.

1) 몸이 아프고 경제적으로 쪼들렸다.

2)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억압을 당했다.

3) 유대인들이 죽인다고 하는 등 육체적인 위협이나 충돌의 위험, 즉 테러의 위험이 있었다.

4) 마음으로 두려웠다.

두려움: 기쁨이 없고 공포를 느낄 만한 답답함

 

2. 이러한 때 디도가 왔다.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가?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하나님께서 바울을 위로하라고 디도를 보내신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에 마음에 오랫동안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아주 강한 어조로 편지를 보낸 것이 있었다. 아주 호되게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고린도교회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가 교회 안에도 가득한 교회였다. 근친상간, 믿는 자들끼리 소송하는 문제, 이방인과의 혼인문제, 우상제물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문제, 은사를 남용하거나 서로 잘난 체 하며 사용하는 문제 등등... 모두가 교회안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것들이었다.

 

영적인 교회가 있으면, 육적인 교회가 있다.

 

바울이 얼마나 책망을 했냐면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런 말까지 했다. 그러니 좋은 의도에서 했다고 해도 마음에 얼마나 걸렸겠는가? 그래서 그동안 후회를 했다.

 

그런데 디도가 와서 그동안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편지를 받고 변화된 것을 보고하였다.

고후7: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바울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바울을 사모했다.

자신의 죄를 애통해했다.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해 열심을 내어 도와주었다.

 

디도의 말을 들은 사도 바울은

고후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고 하면서 안도를 했다.

 

누구에게 격려를 하든, 지적을 하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말하는 사람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말을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눈물과 사랑으로 쓴 편지이긴 하지만 행여 오해를 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바울도 차라리 말을 하지 말걸... 이렇게 후회를 하였으나 지금은 후회를 하지 않게 되었다.

 

3. 그동안 고린도 교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로 영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근심의 목적과 방향성이 바뀐 것이다.

세상에 잠을 잘 때도 우리는 근심을 한다. 머리와 심장이 쉬는 것은 죽고 나서이다. 그런데 생각의 90%는 아니 99%는 근심이다.

 

근심은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육신적인 근심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근심이다.

육신적인 근심은 세상 근심인데, 내가 주최가 되는, 나를 위한 근심이고, 영적인 근심은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근심이다.

 

세상 근심은 결과적으로 사망을 주는 것이다. 세상적인 근심은 무엇을 먹고 살까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우리의 뼈의 진액을 마르게 한다.

 

고린도 교회는 세속적인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치장하고 꾸미고... 아무렇지 않게 우상을 섬기고... 어떻게 해야 세상적으로 더 잘살까를 고민했다. 세상적인 근심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근심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을 향한 근심을 다른 말로 회개라고 한다. 바울이 보낸 눈물의 편지로 인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근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근심, 혹은 하나님을 위한 근심)’이었다.

 

이런 근심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회개와 회개한 그대로 살려는 결단과 행동으로 증명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수고와 노력, 아픔을 경험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만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많은 교회들은 회개를 말하지 않는다.

 

바울이 편지를 쓰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서 회개한 고린도 교인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4.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고후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 간절함이 생겼다.

회개한 증거는 영적인 일에 간절함을 갖는 것이다. 그들의 회개는 영혼구원,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간절함을 갖게 했다.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면 반드시 세상적인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있다. 우리도 영적인 일과 교회의 부흥,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에서 광고가 나오면 어떻게 그것을 실천하지? 이런 간절함이 생겨야 한다. 애를 써야 한다.

 

2)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여기서 변명은 바울을 변호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항상 3그룹이 있다.

비판자, 중립자, 동조자

 

고린도 교회도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하고, 너무 스트릭하다, 직설적이다, 못생겼다, 설교를 못한다, 교회행정을 깐깐하게 한다며 교회를 어지럽혔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 중립적인 자리에 서서 난 아무 일도 안했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바울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판자들도 목소리를 줄이고 협조하기 시작했다.

 

바울의 모든 것이 다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교회의 부흥, 성도의 안전,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깨달은 교인들은 바울을 위해 열심히 변호한다.

 

바람직한 교회는 송곳의 끝이 날카롭듯이 한쪽으로 잘 뭉쳐야 한다. 그래야 벽을 뚫고 구멍을 내듯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부족하지만 복음과 목회에 최선을 다하겠다. 내가 알고 기도하며 깨달은 한 열심히 하겠다. 도와주길 바란다.

 

3) ‘얼마나 분하게 하며

사탄에 속은 것에 대한 탄식이다. 거짓 선지자에 속은 것에 대한 분노이다.

지나온 날 어리석게도 주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살아온 것에 대한 자책이다.

 

들을 말 아니 들을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을 구분하지 못한 체 살아온 것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다짐이다.

 

4) ‘얼마나 두렵게 하며

또 다시 같은 죄에 다시 빠질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제는 동일한 죄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결단이다.

 

그 열매로 그를 안다고 했다. 나의 죄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결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전히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가? 나쁜 습관이나 죄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혹은 나중에, 죽을 때 가서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나님이 성령의 불을 내려 주셔야 내가 하지, 나는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변명하는가? 죄를 두렵지 않게 여긴다는 뜻이다.

 

5)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태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사모함이 생긴 것이다. 모이는 것에 힘쓰고, 봉사, 섬김에 힘쓰며 왜 빨리 주일이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 사모함이 생기는 것이 회개한 자의 참모습이다.

 

6)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에 대한 행동의 특성이다. 전에는 하나님의 일을 좀 하자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로 빠져나갔지만 변화가 되니 열심이 생긴다.

 

7)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죄를 용납하지 않는 마음이다.

내가 낮아지고, 내가 희생해서라도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나의 죄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의 모습을 매일 본다. 그래서 스스로 엄격해진다.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이다.

 

결론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선명해졌다는 뜻이다. 교인들의 색깔이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바울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기뻐한다고 했다.

고후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실랄한 편지를 받고 회개하여 이제는 더 이상 책망을 받을 일이 없게 되었다.

 

우리도 말씀으로 도전을 받으면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깨끗함 즉, 변화된 것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변화중의 하나가 기본에 충실하고, 영적 성숙에 힘쓰며, 제자 훈련을 받고, 영혼구원에 힘쓰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미션2030도 그런 취지이다. 교회의 체질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자극을 받아도 변화를 미루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 중에 혹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해서 그리스도를 자진하여 영접할 수는 있으나,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삼아 순종하는 일은 우리가 원할 때까지 미룰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순종할 준비는 항상 나중인가?

 

이런 태도는 죄이다. 책망을 받는다.

 

불신의 반대쪽은 맹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항상 가운데 위치하기를 원하는가? 불신의 반대는 맹신이 아니라 충성이다.

 

신기하게도 요한복음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계시록 316절은 라오디게아교회에 경고하는 무서운 말씀이 나온다.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님께 달라붙어야 한다.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여러분 중에 혹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니 변화되기를 처음부터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변화의 시기를 내가 결정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바울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인들이 변한 것처럼 어떤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 그 기회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토하여 내시게 된다.

 

교회가 변화될 때이다. 하나님의 간절함을 느껴야 한다. 이때 회개와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라.

 

회개는 마음의 돌이킴과 함께 의지적인 순종이 반드시 함께 와야 한다. 삶의 방향과 지향성,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찌 성도 본인의 선택사항이겠는가?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타하심이 들린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안일했다. 이제 이 설교를 바울의 편지로 알고 돌이켜 회개하자.

 

지금 이순간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순간이다.

고후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9:2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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